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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게 산다는것을 엄청난 불법행위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배려","협력","관용","포용" 등을 배제하고 사는 것이라면,
사실, 그런것들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익을 보고 편하게 사는것이 현실인데
굳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당위성은 무엇인가요 ?
(예 : 지하철 탈때 줄을 서는것 보다 나오는 사람 밀치고 타면 더 빨리 타고 운좋으면 자리에 앉을수도 있다,
여자가 길가다가 쓰러져도 부축해 주면 성희롱등 피곤해 질수 있으니 그냥 듣던 음악이나 들으면서 지나간다,
길에서 주운 급여 봉투에 현금 120만원을 경찰서 가져다 준다 해도 주인을 찾아 주기는 커녕 그들이 다 써버릴지도 모르니
그냥 내가 쓰는것이 더 이익이다 등등등)
혹시나 만약,
사회적 강제 규범이나 도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신다면... 당장 모든 '착한 행동'을 집어치우세요.
그리고 주위를 그리고 스스로의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세요...
사실, 궁극적인 착함이란...그리고 양심이란 외부에서 강제하는게 아니라...
이미 스스로의 마음에 존재합니다.
오히려 외부에서 강제하고 강요하니까... 반발심이 커지는거죠.
(주로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들이 강제되는 규범에 대한 반발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죠...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리고 파고 들어가면 이해할 수 있어요...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걸...)
'착함'이란건 행복해지니까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거지...
외부에 의해 억지로 강제되어서 하는게 '착함'이라고 생각한다면... 쬐금 빡세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보여요.
자연계의 순환과정으로 생각한다면, 다 돌고 도는 겁니다.
언젠간 다돌도 돕니다. 인간이 죽으면 거름이 되고 탄소가 됩니다. 그런거처럼.
나쁜짓을하면,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혹 후손들에게 돌아올수도 있습니다.
그후손이 먼훗날 내가 될수도있구요.
후손이 잘되려면 지방에있는 괜찮은 산을 구매하시어 소나무 200그루와 방이 99개딸린 집을 한채 지어보심이...
행복이란건, 별거없습니다.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려는 그런 마음을 비우시고, 돈에 연연하지 않는 물질만능주의의 삶을 탈피하시고,
자신이 하고있는 일에 만족하시며 사는것도 착하게 사는 한 방법일수있습니다.
통상 고등학교때 배우는 이름 중에 홉스라는 이름이 등장하지요
(지금도 배우나요?)
착하게 라는 정의도,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도 많은 철학가나 이론가 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홉스의 예를 바탕으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홉스는 성악설과 함께 자연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라고 정의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사는 모습을 그냥 두면 개판이 된다는 것이죠.
눈감으면 서로 코베어가는 삶이 피곤하고 두려워서
자연스럽게 싸울때 싸우더라도 서로 이것만은 지키자고 상호 약속을 하게 되죠.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싸움에 유리하고자 한 사람이 이 약속을 깨면
그 사람은 나쁜 놈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약속들이 발전하여 사회적 계약이 되고, 법이 되고 도덕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모든 사회적 약속을 지킬 수 는 없지만
꼭 지킬것은 법이고, 지켰으면 좋겠다는 것이 도덕이나 관용 배려 예절 정도가 되겠습니다.
도덕, 배려 예절.. 을 지키지 않아 조금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일시적으로 편리할 수 있지만
결국 사회(구성원)의 피로도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그 편리함이 일신의 삶 내내 지속될지,
아니면 증가된 사회의 피로도가 일신의 삶을 마치기 전에 자신에게 되돌아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피로도가 대체로 삶을 마치기 전에, 혹은 가까운 후손에게 되돌아 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에
착하게 살라고 교육받는 것 같습니다.
이해 되시나요?
성선설을 바탕으로 설명하거나.. 다른 예를 이용한 설명은 다음 분에게 패스~
개인적으론 성선설도 성악설도 믿지 않는데요.
왜냐면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하는 본능인 '자아'의 방향성은 ...'이기심'과 동시에 '이타심'을 동시에 가지기 때문이에요.
즉,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는 존재란거죠.
프로이드가 어라, 까묵었다;;;
어쨌건 자아는 3단계로 진화합니다. 이기심에서 시작해서 사회적 이타심으로 변화한다고 했죠.
(요즘은 그 학설에서 좀 더 많이 진보했고 변화했습니다... 순간 순간의 경험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계속 끝없이 반응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착해야만 하니까 착한게 아니라... 원래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아의 이기심에 따르는 이기적인 존재인 동시에...
양심을 가지고 있고 행동하는 착한 존재라는거죠.
이런 사람들이 어울려서 사회를 형성하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또한 서로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규제속에서 나름 합리적으로 살아가는거죠 .
남고 말고 이익이니 아니니... 현실에선 매우 중요해요.
아니, 어쩌면... 돈이 세상의 전부인거 같기도 해요...
뭐, 어쨌껀...
사실, 선과 악의 명확한 정의는 없어요.
아무리 내가 선의로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은 악한 행위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남이 악한 행위로 본다고 하더라도...따지고 들어가면 그게 아닐수도 있구요.
살인행위는 악인가? 악하죠... 남에게 고통을 주니...
근데, 아마존에선 식인 종족이 있습니다.(이건 악과 선의 경계에 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의 문화죠.)
즉, 우리가 선이나 악이나 법적으로 제어한 것은... 그저 우리의 문화권 내부에서의 문제일 뿐이죠.
그게 절대적으로 선이다 악이다 할 근거는 없습니다.
또 예를들어... 잘 아시는 십자군 전쟁...
아무리 스스로가 선한 의도로 이교도들을 쓸어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만들겠다는 선한 의도를 지녔어도...
따지고 들어가면... 신 자체를 인간 스스로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냈죠.(신이 존재하는 모든 종교가 그러합니다.)
그리고 이 종교는 늘 왕권과 일치 또는 대립되어 왔어요.
즉, 백성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종교가 쓰여진거에요...(얍삽한 쉑히들...ㅜㅡ)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그리고 종교라도 신이 없는 종교는 비폭력적이죠...왜???
우연이 아니에요.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신이 되려는 종교는 본질을 향한 한없는 방향성을 지니죠.
그러니 자신만 옳다.. 다른건 모두 이단이라는... 얄팍한 신의 종교와 차별성이 있는건 당연합니다.
(근데, 요즘 불교의 패거리 문화를 보니...얘네도 신의 종교가 다된거 같아요... 스스로가 신인줄 착각하니...
스스로가 완전히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순간 신이 되지만... 신이 되려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념의 사다리를 갖다 놓는 순간 쓰레기가 된다는걸 모르는거죠... 이 십쉑히들은요...아니,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건지도...
가난한 중생들을 미혹에 빠지게 만드는게 바로 이 멍청하고 비열한 땡중들이죠...)
그리고 또또 하나 예를 들면...
예전 수도원에선 신부님들이 스스로를 거세하기도 했어요. '간음'이 죄라고 생각했으니 떠오르는 생각마저 죄악시 한거죠.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신이 우릴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성행위를 통해 번식하도록 만들었어요.
근데, 반대로 인위적으로 신을 창조한 인간들은... 스스로 신의 말씀이라며 율법을 만들어... 스스로를 거세하는 이 모순...
이걸 우린 변태라 부릅니다.
신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서...신의 종복임을 자처하다니...
위의 내용에 근거해서 절대적 선의 기준이나 악의 기준이 없다고 했을때... 남는것은 개인의 주관적 판단 뿐이에요.
뭐, 도덕적 양심 이런거... 그리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하구요.
즉, 남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할 근거가 없습니다.
단, 스스로 그렇게 살 권리는 있는거죠.
따라서 착하게 산다는것은 개인의 판단에 의해서만 당위성이 생길뿐...
남에게 강요하면서 그 당위성을 인정받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뭐, 개인적 생각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착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음... 뭔가 비현실적인거 같기도 하고....
배려, 협력, 관용, 포용..
이건 착하게 사는게 아니라, 그냥 "정상"적으로 사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