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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취하는 원룸에 주차공간이 한 네 자리쯤 있었거든
차들이 항상 꽉 차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차가 꽉 차 있는 그 상태가 엄청나게 짜증이 나는 거야
사람이 걸어 나오는 현관 앞에 오만한 본닛을 턱주가리 쳐들듯 떠억 하니 들이밀고 여봐란 듯이 서있는 꼴이 마음에 안 들었어
자동차란 물건이 얼마나 사람을 압도하는 기계인 줄 아냐?
좁은 골목길에 주차된 차 옆을 지나가는 사람은 얼마나 위축되어 보이나?
작금 대한민국에서 외제차의 제 1 효용이란 것이 남을 깔보는 수단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이 자동차 속으로 쏙 들어갈 때면, 나는 그것이 기술문명이 인간성을 한입에 텁 집어삼키는 장면으로 느겨짐
검은 세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자동차의 전면 유리창이 너무 반짝반짝했던 것이 공연히 거슬렸던 것 같기도 해
언제부터였지?
유리창을 보면 언제나 와장창 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이?
그날이 그 충동을 실행에 옮긴 첫날이었어
나는 모두가 잠든 야심한 새벽에 공구통에서 묵직한 쇠몽둥이 하나를 집어들고 도둑고양이처럼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 나왔지
머릿속에는 '반드시 이 일을 해치워야만 한다' 라는 맹목적인 조바심같은 것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어
범행 동기?
항상 그런 것을 들이밀어야 직성이 풀리나?
나는 피가 비치고 아플 것을 알면서도 손가락 거스러미를 잡아 뜯지 않고 견딜 수가 없어
또 겨우 붙어서 달막대는 상처 위의 피딱지같은 것도 눈을 감고 뜯어버려야 속이 시원해
마음 속에 그런 것 한두 개가 생겼다고만 해 두지
주택가 골목길에 사람의 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가만히 귀 기울여 깨어 있는 생멍체의 흔적을 더듬어 본 후,
나는 기괴한 환희심에 휩사인 채 철퇴를 휘둘렀어
"꽝!"
자동차의 전면 유리창이 그렇게 튼튼한 것일 줄이야
충격을 고스란히 되받아낸 손이 얼얼하더군
잠시 당황했지만 두꺼운 유리창의 그 완고한 반항은 내 가슴 속 분노와 복수심의 불길을 더욱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지
이래도 잘난척을 할 테냐?
'꽝'
어디 맛 좀 보라지!
'쩡'
숨이 붙어 있을 성 싶어?
'퍽!'
유리창에 피어나는 뿌연 거미줄이 달디 단 설탕가루처럼 흩뿌려지더군
내 작품을 채 감상할 시간도 없이 나는 날랜 몸놀림으로 방에 들어왔다
완벽한 성공이었어
설사 차 주인이 그 소리를 들었대도 자기 차가 부서지는 소리인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그 다음날 오전부터 수업이 있었지
설사 수업이 없었대도 밝은 하늘 아래 드러난 나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나는 일찍 일어났을 것이야
약간의 걱정과, 해치웠다는 대견스러움이 뒤섞인 채 눈을 뜨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가방을 둘러매고 태연한 얼굴로 건물의 현관을 나서는데,
박살난 유리창 옆에서 담배를 태우는 차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동차의 유리창을 바라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지
'과연 만족할 만한 균열, 분쇄, 함몰의 잔해로다!'
걸음을 약간 늘어뜨리면서 안됐다는 듯한 무언의 위로를 얼굴 위에 담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내 작품의 완결을 도모했음
그 아침이 있은 지도 벌써 십년이 지났나
지금도 나는 내가 저지른 그 파괴적 행동에 눈곱만큼의 윤리적 가책도 느낄 수가 없다
그 자동차의 유리창은 그날 밤에 나에게 부수어짐을 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확신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가 없거든
왜냐고?
내가 되묻지
그 유리창의 운명이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그런 완벽한 범죄의 희생물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유리창 하나가 부수어짐으로써 이 세상이 그만큼 더 평화로워졌다면 뭐라고 반박할 텐가?
누구든 사람을 칠 바에야 유리창을 부수는 것이 휠씬 바람직한 일 아닌가?
어디 한번 대답해 보려무나?
자 그럼
버스 유리창은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