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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회사 실장님이 이제 40초반 정도 되셨는데..
어캐어캐하다 술자리에서 학교 얘기가 나왔거든요...
근대 그분은 고졸이시고... 저희는 00학번 입니다
그러다보니 특수한 경우 제외하고는 상고, 공고는 그냥 일반 인문계 못간 애들이 가는 곳 머 대충 이렇게 정의 하고 있던 찰나에
본인이 덕수상고 갈땐 200점 만점에 195점 받아야 갈수 잇었고 본인이
195점 컷트라인으로 겨우 들어갔다 막 이러고 정말 대단한 학교고 어쩌고.. 학교자랑 엄청하시던대
그정도면 서울대 갈 정도 아닌지...
몇십년 전에는 유명한 상고나 공고도 엄청나게 공부잘해야 갈 수 있었다는 사실은 대충 들어 알고 잇지만...
저랑 열살에서 12살 정도 차이나는데 그시점에서도 그정도로 덕수상고가 대단한 학교였는지
궁금해서 올립니다...
상고공고 님은 잘못알고 계신게 많네요..
80년생 덕수상고 나왔습니다.
한양공고 따위 한테 꼴통 소리 들을정도 절대 아니었는데... 제가 백분유ㄹ 50%대였는데..한양 왠만한 과는
다들어갈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거기서 거기였다는 말입니다. 물론 한양이 공고 특성상 과가 많아서 그럴뿐이지..특수학과 제외하곤
학교 수준은 한양이 더 양아치 삘이 큰 학교였어요.오히려 성동기공보다도 기피되던 학교였지요..
한양도 과거 명문 공고였지만, 따지자면 덕수에 필적할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빨간마후라? 그건 S 상고인가 ..암튼 송파쪽에 있는 학교로 알고 있음..
그리고 40대 초반이면 오바인듯 합니다.
50대 정도면 초 명문학교였던것은 맞습니다. 고 노무현 정권때 서기,재무 담당이 덕수 선배님들이십니다.
저때 현역 법관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로 알고 있는데요.. 선린과 더불어서요...
흠...40대초반이면 덕수상고일반 중학교 반에서 중하위권에서 가는 수준입니다. 제가 40인데 그당시 제 동창들중 반에서 중간이하
(아주하위권은 아니고 55명중 30등 내외) 친구들이 덕수상고로 진학 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아니고 개인 형편에 때문에 가신분들 아니라면 좀 심하게 오바하셨습니다.
저희때 일반 인문계보다 공부 잘한 사람들이 간곳은 수도공고 정도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저보다 두 살많은 사촌형이 역시 덕수상고 갔는데 이 분은 그보다 더 못한 성적 이었습니다.
일부러 덕수상고를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고 제가 아는 사실만 말씀 드립니다.
덕수상고 졸업생으로 실장님은 대충 제 아래기수쯤 될듯합니다.
제가 남여공학 1기 이며 제 윗기수 분들은 상당히 똑똑하고 학업 성취도가 높았습니다.
연합고사 성적이 150~160이 커트라인 이었죠..(200점만점)
제기수부터 흐려지기 시작했어요.
네.. 저는 움직이는 커트라인 !!!
실장님이 오버하셨어요.
약간 자격지심이 발동하신듯하고 또한 상고중에서 선린상고,경기상고. 3대 명문이 맞습니다.
다만, 직장생활 슬기롭게 하시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세요.
여기서 알아보고 괜히 주위사람들과 뒷담화 하다가는 .... 아시죠^^.
저는 93년도에 덕수상고 입학했었는데요. 성적은 중상위권 이였고요.
그때 당시 덕수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친구들이 선린, 경기상고에 진학을 했었구요.
공고는 수도전기공고 정도가 우수했던것으로 생각이 납니다.
덕수의 주로 진학은 금융권이였습니다. 은행권에 취직한 수많은 동기들 97년도 IMF때 직장을 잃었죠.
참으로 직장운이 없었던 시기였네요.
제가 덕수에 진학할때는 살기가 아주 힘든시기는 아닌지라 저는 사회생활을 빨리 하고 싶어서 진학을 했었네요.
하지만 제 위에 선배들은(60~80년대) 대학진학할 형편이 안되신 분들이 많이 진학을 했던 학교로 알고 있습니다.
덕수 졸업하시고 서울, 연.고대 진학하신분들도 많구요. 지금 금융권에 지점장이 600명 가까이 있는것을 알고요.
대학교수, 법무계, 대기업 CEO 등 여러분야에서 선배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이 지금도 덕수의 명성을 이끌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특성화고다, 산업고다 이름도 많이 바뀌고 해서 다소 우수한 학교로 보시는게 맞는게 같고요.
그래도 모교에 대한 자부심과 전통만큼은 선후배모두 최고로 생각합니다.
90년도 이전에 입학하셨다면 시험점수는 몰라도 아무튼 공부는 굉장히 잘하신 분이라 보시면 될듯하네요.
아마도 그분 말씀에도 일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상업과 11개 학급 과 정보처리학과 2개학급으로 나누어 지고요(남학생)
여기에 추가로 여학생이 총 4개 학과(상과 2, 정보 2)로 나누어 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정보처리 학과는 학급 하위권이 상업과의 상위권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해 들었고요.
그래서 그 정보처리학과의 대부분의 학생분들이 중학교 성적 상위 5% 내외의 우등생 학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의 친한 친구들이 (삼선중학교 전교 2등, 서라벌중학교 전교 3등..) 이곳 정보처리학과를 졸업한 동문이며,(훗날 모두 야간대학교를 다 졸업하더군요. 주경야독.... 역시 대단한 친구들)
졸업 당시 총 57명 중 53명이 금융권 및 대기업에 입사, 2명은 명문대 등등. 입학 했다지요.
물론 야간대와 대기업을 동시에 석권한 학생도 여럿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제 친구들이 저보다도 더 공부 잘 했었지만,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운 친구들 이었습니다.
지금 그 친구들이 한미은행 국민은행(구 주택은행)에서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더군요.
저는 고려대 출신입니다.(다 서울 성북구에서 살았던 친구들 / 가끔 주말에 대학로를 함께 누비던 기억이 나는 군요)
저는 덕수에 91년 입학했는데요.
우리 중학교에서 3명이 같이 입학했구요. 같이 입학했던 친구가 전교 5% 수준이였고, 그 다음이 17%, 그 다음이 저였죠. ㅋ
저때도 정보과랑 상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 정보과는 15% 이내 상과는 30% 이내였던 거 같네요
당시에 덕수 갔다고 하면 다들 공부좀 했네라는 말 들었구요.
상고 중에서는 덕수 선린 경기를 꼽았고, 여상은 서울여상이 높았던 거 같구요.
아무튼 92년 후배때부터 성적이 좀 떨어지기 시작했던거 같구요.
94년 수능 때 우리반 1등이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특차 합격했죠. 암튼 저때까지는 괜찮았던 거 같아요.
덕수상고출신....인사들.......많지만......이종남법무부장관, 검찰총장, 감사원장 지냈음.....대법관후보,,,전국사법고시 수석.....
독학으로 공사판을 전전하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법조인...조재연변호사....코리아나 화장품 유상옥회장....소망화장품대표 강석
창, 신한은행장...이백순...관세청장 허용석...공정거래위원장(장관급) 김동수....국무조정실장...김동연.....성우 배한성....야구선수
이용규등....변호사들이 뽑은 1등 판사...약자배려하는 판결로 유명했던...차관급...부장판사...황적화.....BMW 회장...김효준...회장
그들은...신화....독학으로...정상으로 올라선 자들......부산상고 노무현대통령....목포상고 김대중....선린상고....서울여상.....
오직...실력으로 버틴 사람들......앞으로도.....서울여상, 덕수상고, 선린상고는......계속될것임....가난한 중학생 아이들이...
계속 존재하고....그중에 똑똑한 아이들이 존재함....
1980년졸업 서울공고 서울대 합격자 입니다. 29명 합격으로 전국 20위 입니다.
참고로 한양공대 120명, 인하공대 150명, 연고대 52명 입학 했습니다.
현재 저는 1977년 입학이고요 1980년 졸업. 우리반 54명 졸업 박사만 6명 입니다.
1980년 1월 30일자 동아일보기사 붙임파일 참고 하세요
덕수 선린은 70년대까지 명문이 맞습니다. 덕수출신들은 은행을 많이 들어갔고 선린출신들은 대기업에 많이 입사하였습니다.
대부분이 가난하여 상고에 입학 했고 많은 분들이 야간대를 나왔지요.
제가 듣기로는 8-90년대를 지나면서 혼란의 시기(학력저하)였고 지금은 다시 많이 좋아졌다 합니다.
당시 연합고사 성적으로 보면 전국 1위는 서울여상이 맞습니다. 서울여상은 반에서 1-2등 정도(60명중) 해야 서울여상에
원서를 넣을 수 있었지요. 선린,덕수도 최소한 반에서(60명) 5등 안에는 들어야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80년대 덕수 입학의 평균 점수가 195점은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 195점 맞고 덕수 입학 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에 이름 없는 대학을(제 지인 청주대 나오고 회계사됨) 나오고도 회계사 판검사 되는 사람들 많이 있잖아요?
확실한것은 70년대까지는 선린,덕수는 명문이였고 서울여상은 거의 수재정도가 입학 했습니다.
덕수상고 87년 입학한 사람인데요. 제가 제대로 설명드리지요. 제가 입학하기 전해 그러니까 69년생 선배가 1학년 입학 할 당시 덕수상고 역사상 처음으로 지원자 미달사태가 일어났어요. 특별히 문제가 있지 않은 한 지원자 전원이 합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죠. 걔중에는 정말 양아치같은 선배들 많이 들어왔는데요. 각종 동아리에 문제있는 선배가 들어와 말썽도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유명한 일화하나 소개 할까요? 당시 1988년 서울올립픽 개박식 첫번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군무로 덕수, 선린 포함 몇몇학교가 북치고 군무하는 마스게임에 동원됐는데, 그 해당 학년이 바로 1986년 입한한 69년생 선배들이었죠. 당시 87년 제가 1학년이라 해당이 안되고 2학년 전체 선배들이 나가게 됐죠. 수업도 재끼고 한참 연습하고 있는데 조직위에서 학생수가 너무 많다고 돌연 중간에 일부 학생들 (절반정도) 못나가게 된거에요. 아침조회가 막 끝났을때 갑자기 와장창 유리깨지는 소리가 아래층(3층 - 1학년, 2층 - 2학년)에서 들려 내려가 봤더니 2층 한층 유리창 전체를 올림픽 마스게임에 못나가게 된 학생들이 깨뜨린 거였죠. 그후 공박사(공창균 교무주임)가 가담학생 전원 퇴학시키는 사태가 일어났지요.(정말 얄짤없이 퇴학 혹은 전학 조치해 버렸답니다.) 그 선배때 부터 기울기 시작한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후에는 제가 재학생시절 미달은 안 일어났습니다. 제가 졸업한 후 미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입학할때 1987학년도 연합고사 인문계고등학교 컷트라인이 135점 이었고 덕수상고 컷트라인은 145점 정도 였다고 기억해요. 인문계보다 10점 정도 높긴 했죠. 참고가 되셨길.....
덕수상고는 오래전 힘들 때 부터 머리 좋고 공부 잘 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이 지원했습니다.
덕수, 선린, 경기 3개교를 상고의 명문으로 칭했지요.
그럴만한 것이 그 3개 학교를 나오고 어느정도만 하면 은행 취업이 보장 됐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에 덕수상고 들어갔다고 하면 집안 잔치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덕수상고를 들어가고 공부한 다음 은행취업해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은행을 다니면서 야간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을 다니고..
고시를 패스하고..
그런 케이스가 많았죠.
거기에 덧붙여 예전 동대문 야구장에서의 고교야구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야구시합(준결승 이상)이 있는 날이면 금융권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습니다. (실제상황)
그리고 웬만한 덕수상고의 야구 시합은 저녁시간대로 잡곤 했죠.
주변 상인들의 강력한 요구.. ㅋㅋ
하여간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연고전(고연전)이 있듯이 덕선전(선덕전)이 있었습니다.
아.. 그 때가 그립습니다.
실장님이 저랑 비슷한 연배 이신것 같은데
상고나 공고는 그당시에 관심밖에 있어서 자세한 사항은 모르지만
그때 상고나 공고는 하롱님이 알고 계신대로 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제가 신일중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야구대회때 덕수 상고하고 자주 붙었었습니다.
기억 나는것은 남녀공학이라 부러웠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