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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4일 공개된 개인 재산 " 1조원 " 이상 부자들은 대한민국에 총 19명이 있었다.
이 중 눈에 띄는 대한민국 재벌순위 13위 김택진 (1조2812억 원)
김택진 (金澤辰)
1967년 3월 14일생
출생지 서울
사업이 실패해 낚시터에서 자살기도했던 아버지,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던 어머니 어린아이 눈에
사회는 냉혹했고 잔인했다. 가난했기에 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는 전문직을 원했다. 하지만 당시 희소했던 개인용
컴퓨터의 효시 애플2를 보고 그는 꿈을 바꾸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85학번으로 입학한다.
그리고 김택진 사장은 자신과 비슷한 야심을 가지고 있는 동아리를 찾아 나섰다.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2층에 있던 SCSC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서울대학교 컴퓨터 연구 동아리) 교수님들보다 동아리 선배와 동기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동아리 사람들은
실력이 대단했으며 하나같이 컴퓨터에 미쳐있었다.
SCSC 2년 선배인 이찬진은 후배 김택진에게 워드프로세서를 함께 개발하자고 했다. 당시 대학생 레포트는 현재와 달리 컴퓨터로
작성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찬진 사장은 레포트를 컴퓨터로 작성하면 훨씬 편할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준비
하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같은학교 후배이자 같은 동아리인 후배 김택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 워드프로세서 개발진들
(이찬진/김형집/우원식/김택진)은 놀랍게도 사업가가 아닌 전원 서울공대-SCSC생들이였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워드프로세서가 바로 아래아 한글이었다. 아래아 한글은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효시로 불리울만큼 사
회전반에 엄청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사람들은 아래아 한글을 쓰기 위해서 컴퓨터를 구매할 정도였다. 대학생들이 자신들
레포트를 보다 더 간편하게 쓰기 위해 개발했던 아래아 한글이 대학생들이 아닌 직장인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것이다.
아래아 한글이 출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찬진사장은 한글과 컴퓨터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김택진 사장을 영입하려 했지만
김택진은 교수가 되고 싶다며 한글과 컴퓨터로 입사하지 않고 동대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그렇게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과정을
끝내고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려 할때 현대전자가 병역특례의 혜택과 해외연수를 보장하면서 취직을 그에게 제안한다.
당시 현대가 대학원생 김택진에게 내건 조건은 매우 훌륭했다. 근무지는 미국 보스턴 전자 연구소였으며 여기서 근무할 시
병역혜택과 (병역특례) 해외연수와 적지 않은 급여까지 보장해준다는 조건이였다. 결국 김택진은 미국 보스턴 전자연구소로
떠난다. 그는 전세계의 컴퓨터를 서로 연결시켜주는 인터넷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일종의 통신 표준 규격인 TCP/IP 기술을
마스터하여야 했고 1년 6개월 동안 연구에 매진한 끝에 보스턴 전자연구소에서 병특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그는 한국최초의 인터넷 기반의 포탈서비스인 아미넷(지금의 신비로)를 개발하게 된다. 당시 김택진은 현대 병특요원임에도
불구하고 정주영 회장이 주목하는 인물이 됐고 덕분에 병특요원이 매년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다. 또한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를 MS 리저널 디렉터로 선정하며 MS의 모든 제품들을 무료로 제공해주며 제품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길 원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현대그룹 내부에서 현대전자와 현대정보통신사업부에서 아미넷을 놓고 전담하기 위해 주도권 싸움을 하자
정작 총 개발자인 김택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기에 됐고 1년넘게 사업이 표류되면서 그는 결국
염증을 느끼고 현대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벤처기업의 시작이라
불리우는 NC소프트였다.
당시 그쪽 계통에서 소문난 프로그래머였던 김택진이 회사를 차렸다는 소리에 NC소프트는 창업하자 마자 SK로부터 인터넷 기반
의 PC통신 서비스인 넷츠고 프로그램 제작을 의뢰받았다. 그리고 회사는 성공적으로 구축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덕분에 SK를 시
작으로 대우/KCC/금호등 유수 기업들의 인터넷 환경을 구축해주면서 자금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서울대 공대 1년 후배인 송재경씨를 만나게 되면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게 된다. 송재경씨는 대한민국 최초 상용화 온라
인 게임인 텍스트 기반의 머드게임 쥬라기 공원 개발자였으며 서울공대 후배인 김정주와 넥슨을 공동창업하여 세계 최초의 머그
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한 사람이였다. 그렇게 1996년 온라인 게임 리니지 개발을 김민수와 함께 시작하였고
1997년 12월 리니지는 NC소프트에서 완성하여 공개된다. 당시 한국 게임은 일본 게임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 3등신에 아기자기한
만화풍의 그래픽이었던데 반하여 리니지는 8등신에 사실적이고 실감나는 그래픽이었다. 그렇게 리니지는 큰 성공을 거두고
NC소프트는 본격적으로 컴퓨터.비디오 게임 산업에 몰두하게 된다.
이후 리니지2,길드워,아이온등 수 많은 게임들이 히트치며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게임 개발 및 서비스업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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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나이 43살에 자기 자산이 1조 3000억. ^^;
얼마전에 신문보니까 현재 한국의 100대 부자들과 미국의 100대 부자들을 비교해봤더니, 미국은 당대에 부를 성취한
창업 부자가 76명, 한국은 달랑 24명... 거기다가 5대 그룹(삼성 현대 LG SK 롯데) 직계및 방계 가족이 37명.
우리나라처럼 재벌들이 서로 밀어주고,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 분위기에서 어쨌거나 대단하네요.
Sean Lennon - Into The Sun
위에서 말한 분은 미국과 한국의 자수성가 부자의 단순한 숫자를 말한 것이 아니라
100대 부자 중 자수성가의 비율을 말한 것이니 양호하지 못한 것이지요.
나도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만들고 견인하는 힘인데
그러한 믿음이 없는 자본주의는 결국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봉건제나 다를 바 없게 되지요.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미국의 거부들이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며 더 많은 부자들이 탄생하는 자본주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게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닙니다^^;
드림님 글이라 음악 들으러 잽사게 클릭클릭! 했는데,
김택진이란 분 대단하네요.
역시 사람은 똑똑해야.. *.*